지은이 ; 다카무라 토모야
출판사 ; 책읽는수요일
제이 셰퍼는 아이오와 대학에서
미술 과목의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스몰하우스’를 지었다.
이유는 ‘많은 물건과 공간에
신경을 쓰는 게 귀찮아서’다.
집에 들여놓는 물건은 적을수록 좋으며
쓸데없는 공간을 관리하는 일은
소모적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스몰하우스의 크기는
주차장의 자동차 한 대
주차할 수 있는 공간.
셰퍼는 자신의 설계 방식을
‘뺄셈 스타일’이라 부른다.
필요한 물건들을 자꾸 보태고
늘리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제외시켜 나가는 것이다.
완벽한 디자인이라는 건
그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제거해야 할 뭔가가 없을 때
비로소 달성되는 법이다 - 생텍쥐페리.
최상의 실용성을 가진 공간만 남긴다면
결국 남는 건 부엌, 욕실, 침실,
그리고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만능의 방 하나 정도가 되기 마련이다.
옛날에는 하나의 방이
평소에는
가족들이 모이는 거실이 되었다가,
화로를 놓으면 주방이 되고,
밥상을 차리면 식당이 되며,
이불을 깔면 침실이 되곤 했다.
셰퍼가 스몰하우스를 짓기 전에는
트레일러 하우스에서 살았다.
미국에서 트레일러 하우스 생활이라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야말로 빈곤의 상징에 가깝다.
그런데 셰퍼 자신은
딱히 돈에 쪼들리는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단순히 그런 생활을 좋아했던 것이다.
사실 그 생활은 그가 유년 시절부터
동경해 오던 것이었다.
어렸을 때 그는 적은 수의 가족과 살았는데,
그에 비해 집은 너무 커서 부모님은
청소며 페인트칠을 비롯해
집을 보수하는 데 필요한 일들을
셰퍼에게 많이 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그는 마음껏 뛰어놓거나
책 읽을 시간이 많지 않아
‘나는 나중에 아주 작은 집에서
자유롭게 살아야지’
하고 남몰래 결심했다고 한다
셰퍼는 취미의 단계를 넘어
스몰하우스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차렸다.
스몰하우스의 평당 단가는 높은 편이다.
절약을 염두에 두고
스몰하우스를 지은 것이 아니라서
집이 작은 만큼 돈을 좀 더 들여
고급스럽게 지을 수 있다.
작은 공간에서 살지만
삶의 질과는 전혀 타협하지 않으면서
단순하고 만족스러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다른 스몰하우스 이용자들의 사례.
*겨울을 대비해
곡물을 비축해 둘 필요도 없고,
전쟁 중에 그랬던 것처럼 미사일이 떨어져
가게의 물건이 몽땅 사라지거나
도시 기능이 마비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식량을 비축해 두기보다는
신선한 재료를 마켓에서 사다 먹는 게
더 좋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대량으로 팔 궁리만 하는
기업들의 의지는 뜨겁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에게 필요한 것은,
물건을 사지 않을 줄 아는 센스,
물건을 구입하기보단 버리는 기술,
정보 수집 능력이 아닌 정보 차단 능력이다.
나는 종종 배낭 하나로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생각한다.
그저 배낭 안에 적당히 필요한 것들을 넣고
아무 속박 없이 여행하듯 살고 싶다는 생각이
언제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물건을 소유하는 이유에
부와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의 측면이 있다.
고가의 물건을 구입할 때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풍요로운 나라일수록
값비싼 물건이 높은 지위를 나타내는
기능을 하지 못한다.
어중간한 사회일수록 옷이며 시계 따위를
특별한 계층에 대한 욕망으로
사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큰 집은 평생 갚아야 할 빚을 내지
않고서는 장만할 수가 없다.
매달 꼬박 나가는 고정비도 만만치 않고,
직장일이 힘들어도 대출금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너무 큰 집은 집이라기보다
채무자의 감옥이다.
*명심하라.
없으면 생활에 지장을 줄만한
최소한의 물건과
진심으로 함께하고 싶은 물건만이
마지막까지 남게 될 자신의 친구다.
이것이 바로 심플 라이프의 법칙이다.
*‘보보스 bobos ; 부유층이면서
보헤미안적인 예술 감각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집과 자동차 등 물질적 풍요에 매달리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자랑하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정신적 만족 추구에 무게를 둔다.
*수입이 바닥나도록 생활하는 게 아니라,
수입의 절반 정도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기 수입의 105퍼센트에 해당하는
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그녀도 자기 집 리모델링과 수리를 위해
돈을 모으고, 자재를 사기 위해
창고형 마트를 돌아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큰 집에 타성적으로 익숙해 있었다.
2004년 여름에 그녀는 뜻을 굳히고
자신의 집을 팔아치웠다.
그리고 소유하고 있던 대부분의 물건을 처분했다.
동기는 여러 가지였다.
그녀는 과테말라에 학교를 세우는 일을
도우러 갔다가 현지인들이
얼마나 적은 물건으로 생활하고 있는지를
직접 눈으로 보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한편 친한 친구의 암 발병을
곁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 시간들을 겪으면서 그녀는
큰 집에서 지금과 같은 생활을 더 이상 지속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큰 집을 짓고 지구에 부담을 주면서
융자를 갚기 위해 허덕이며
일하는 것보다는,
거처를 작은 집으로 옮기고
남은 돈과 시간으로 뭔가 의미 있는
다른 일을 하는 게 낫다고 말이다.
오래 살아봐야 백 년,
큰 집이나 작은 집이나 죽을 때가 되면
사라질 것들이지 않은가.
*윌리엄스는 스몰하우스에서 생활을
시작하고서부터 물건을 거의 사지 않았다.
그녀는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건의 수를
정확하게 헤아려 그 수를
300에 맞추는 것을 규칙으로 하고 있다.
문구류, 옷, 책, 신발, 그릇 등 모두 합쳐
300개까지 제한을 둔다.
하지만 일종의 게임 같은 것이지
강박적으로 하는 일은 아니다.
티셔츠를 한 장 사면 한 장은 처분한다.
그녀에겐 물건의 수를 줄이는 일이
자유를 향한 길이었다.
*작은 집에 사는 주된 이유가
지구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돈을 절약하겠다는
실천적인 면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솔직히 나는 그저 큰 집에 쓸 시간과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을 뿐이지요.
*집을 작게 하고 물건 사들이는 일을
자제하려는 노력은
결과적으로 상당한 시간과 돈을
가져다주었다.
*미디어에 의한 세뇌를 거부하고,
‘큰 집에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에
노출된 환경을 끊어야 한다.
사회적인 체면이나 상식 같은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미디어의 영향 때문이다.
땅이나 집에 들어가는
말도 안 되는 거액에 대해
누구나 한 번쯤 의문스럽게 느낀 적이
있지 않을까.
*인간은 왜 쉴 새 없이 죽어라 일을 하는 걸까?
그 이유는 살아가기 위해 정말로 필요한 것
이외의 것이 계속 생겨나기 때문이다.
필요 이상의 음식과 제품,
필요 이상의 주거 공간,
필요 이상의 교통 인프라도 그렇다.
의료나 교육에서조차
본래 목적을 초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이런 것들을 뭉뚱그려
‘사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 사치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팔려는 행위나,
그 사치를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둔갑시켜
사람들의 욕구를 충동질하는 광고,
그런 사치를 유지해 주는 노동 서비스도
모두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들이도록 하는 광고나 오락, 서비스들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자신의 목을 스스로 조르는 이러한 경제는
차라리 ‘쳇바퀴’라고 표현하는 편이
어울린다.
풍요로워졌다고 하지만
실제로 증폭하는 건 욕망과 시기심
그리고 지루하고 가혹한 장시간의
노동뿐이다.
쳇바퀴 경제는
일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욕망이나 시기심에 떠밀린 노동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도 없다.
*주택 융자나 매월 고지되는 각종 요금의 압박을 받으면서
동시에 자유를 얻을 수는 없어요.
*쾌적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죽어라 열심히 일하는데,
동시에 그렇게 일하느라 쾌적한 생활을 포기한다.
이와 같은 쳇바퀴 돌리기가 쌓이고 쌓여서
사회 전체의 쳇바퀴 경제가 생겨난다.
어쨌거나 선진국에서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선
마구잡이로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경제와
인연을 끊으려야 끊을 수 없다.
텔레비전 광고, 극단적인 패션,
매일 포장만 바뀌는 기호품 등등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되는 것일지라도
누군가가 쓸데없이 경제를 돌리는 일이 계속되는 한 그로부터 자유롭긴 어렵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부지런히 경제활동에 참가하지 않으면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구조인 것이다.
*빚을 내서 물건을 사는 행위는
미래의 시간까지 구속하는 일이므로
아무리 호화로운 것을 산다 해도
그걸 자유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경제로부터의 자유 : 과소비를 부추기는
요즘의 풍조에 쓸데없이 말려들지 않고
거리를 둔다는 의미.
많은 돈이 필요하지는 않다.
정작 필요한 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생활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과 기존 경제에 현혹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
그리고 그 이상의 짐이 되는 일을
자신의 생활 영역에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정신력뿐이다.
*스몰하우스는 그런 삶이 가능하도록
하는데 적잖은 도움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를 적절히 이용하여
이미 확립된 풍요로부터
어느 정도 혜택을 받으면서
한편으로 자신의 소비를 억제하고
가능한 한 자유롭게 사는 편이
더 현명한 방법일 수도 있다.
과도하게 일을 하지 않아도
평화롭고 건강한 생활이 가능한,
그리고 어느 정도의 자유가
확보되어 있는 상태가 유토피아.
*실내에는 넉넉한 안락의자 하나가 있고,
그 주위는 벨이 좋아하는 많은 책과
그림, 음악이 에워싸고 있다.
그는 그것들을 ‘보물’이라 부른다.
도시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그토록 자주 사용하던 인터넷도
스몰하우스에 살게 되면서
훨씬 덜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얻게 되는
대량의 단편적인 정보보다는
깊이 있는 책을 더 좋아하게 되어
최근에는 톨스토이를 비롯해
다양한 작가들에 빠져들게 되었다.
*맑은 날은 땅을 일구고
비 오는 날은 글을 읽는 청경우독의 생활이다.
*그는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경애하고 있고,
‘큰 집과 큰 부채를 짊어지고서 주위의
자연세계를 음미할 시간도 없이 사는
삶은 어리석다’는 소로의 철학이
자신의 생활과 스몰하우스 운동의
기반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임대 아파트를 뛰쳐나와
스몰하우스를 짓고 산 결과,
벨은 무엇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까.
그렇게까지 해서 경제적 자유와
시간적 자유를 찾으려는 이유가 뭘까.
그는 그것이 물건과 정보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기 이전의 것,
즉 사람의 마음 때문이라고 말한다.
*시기심에 불타 소비 행동으로 치닫거나,
물건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한
톱니바퀴가 되거나, 그렇게 하여
손에 넣은 큰 차를 타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이런 것이 이 사회의 진짜 문제가 아닐까.
*스몰하우스에 들어가는 건
동물로서의 육체보다
인간으로서의 정신 때문이다.
자신의 의식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을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자신만의 전용 우주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 공간은 적당히 좁은 것이 좋고,
조종실처럼 몸에 딱 맞는
느낌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쓸데없는 물건, 낯선 물건이
놓여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느 순간 내가 있는
바로 이곳을 중심으로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가 폐쇄적인 작은 공간을 통해 얻는
저 신기한 감각은,
너무나 당연한 나머지
평소에는 신경 쓰지도 않았던
자신의 의식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닐까.
*그녀에게 있어서
‘정말 좋아하는 것’이란 스몰하우스 안에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나누는
조용한 대화였다.
*소지품 하나하나는
기능적인 미를 토대로 마련한다.
매일 사용하는 것밖에 갖고 있지 않다.
집을 구성하는 요소도
극한의 조건에 따라 선별되었고,
그 결과 필연적으로 남은 것이
서재 하나와 침실용 로프트, 포치,
그리고 집의 중심에 자리 잡은 난로라고 한다.
*그녀는 그 이상 뭔가를 편리하게 하거나
혹은 여러 조리 기구를 사들여
식사에 다양성을 주는 일에는
전혀 흥미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런 일로 인해 늘어나는
보잘것없는 행복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의
대화에 의해 얻어지는 행복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쓸데없는 물건이라고는
얼씬도 하지 못하는
작고 간결한 생활에서는,
모든 감각이 예민해져서
정신적인 활동에 활력을 준다.
*누구나 뭔가에 집중하려고 할 때는
주위의 쓸데없는 것들을 배제한다.
그녀의 경우 매일
집 전체, 생활 전체에서 쓸데없는 것들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생활을 단순하게 하기 위한 방법;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의도적으로 지워나가고 필요한 것만
남기는 방법.
-정말 좋아하는 것으로 생활을 채우고
그 외의 것들이 저절로 떨어져 나가기를
기다리는 방법.
그녀는 집과 생활을 억지로
단순하게 만들려고 노력한 적은 없다.
그녀의 집이 단순해진 것은
불필요한 것을 의도적으로
제거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대화’를 중심으로 그에 필요한 것들만
자연스럽게 모아둔 결과다.
그녀처럼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외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생활방식은
분명 이상적이고 누구나가 동경할 만하다.
다만 현실에서
생활을 단순하게 하려면
불필요한 것들을 의도적으로
멀리하려는 노력을 해야만 할 때가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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