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던 스님이 내 이름을 지어준 것으로 이제껏 알고 있었는데, 스님이 지어준 것은 동생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종래. 늘 동생의 이름이 이상했었다. 한자 뜻하고는 상관없이 ‘끝이 온다.’라고 해석되었다. 아무래도 재수 없는 이름 때문에 동생이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것만 같다. 어쩌면 그 스님은 동생의 운명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50년 전. 엄마는 집안에 우환이 자꾸 생기자, 백일 갓 넘은 나를 업고 외가 근처에 용하다고 소문난 점쟁이를 찾아갔다. 순서를 기다리다가 당시에는 명함도 못 내밀던 초짜 역술가를 알게 되었고, 그에게서 공짜로 내 이름을 얻었다. 이름의 내력에 대해 자세히 묻자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다. 태어난 지 백일이 넘도록 나에게는 이름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몰라도 되는 이야기를 수필 같은 걸 쓰느라 알고야 말았다. 나는 그저 10대 때부터 줄곧 생각해온 문제로 글이나 한 편 써보려는 것뿐이었다. 편안한(安) 뜻을(志) 맞이한다(迎)고 나름 해석한 내 이름이 나를 어떻게 이끌었으며, 대답할 준비가 되었는가 하는 것에 대해…. 이름대로 살아질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나에게는 있었다.
근근이 먹고사는 농부의 집안에 태어난 세 번째 딸을 반기는 이가 있었을까. 셋째 아들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오빠는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딸들과는 다른 대접을 받았고, 그런 차별이 흔하던 시절이라 나도 어느 정도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오빠는 태어나서 숨만 쉬고 있어도 장한 아들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내 남편에 비하면 오빠가 받은 건 대접도 아니다. 큰아버님은 딸만 일곱인데, 아버님은 떡하니 첫아들을 얻었다. 얼마나 귀한 아들이었으면 이름을 ‘일(一)’로 지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는 의미란다. 남편은 자신이 노력해서 아들로 태어난 것도 아니면서 오로지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줄곧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자신만 받는 대접에 익숙해졌다.
사랑은 노력한다고 받는 게 아니다.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믿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면 된다. 나는 내가 무슨 대접을 받고 싶은지도 몰랐기 때문에 남을 올바로 대접할 줄도 몰랐다.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없기로는 둘째 언니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였겠으나, 나와는 원하는 것이 달랐고, 사는 방식도 달랐다. 언니는 다른 사람의 인정과 칭찬에는 관심도 없었다. 오히려 판단하려는 그들을 누르고 올라서는 게 목표인 것 같았다. 큰언니가 첫째로서 받는 관심, 오빠가 아들이라고 받는 대접에도 굴하지 않았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맛없는 것은 먹지 않았으며,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았다.
언니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내 몫이었다. 좋은 것은 가져보지 못했고, 온갖 심부름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아무 음식이나 군말 없이 잘 먹었다. 그리하여 사랑을 받았다는 이야기 같은 것은 없다.
엄마와 언니들은 손해 보는 걸 싫어하고, 희생과 양보는 바보나 하는 짓이라고 여겼다. 선량함은 미덕이 아니라 조롱의 대상이었다. 그런 언니들이 결혼해서 자식을 낳았다. 집에서 귀하게 여기고 사랑을 줘야 나가서도 대접받는다며 애지중지 키우는 것을 지켜봤다. 언니들은 교회를 다니더니 천국행을 보장받았나 보다. 나보고도 교회 다니고 천국 가라고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언니들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천국에를 가야 하는지 망설여졌다.
나는 오래도록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고 가르친 동화, 희생의 가치를 찬양하는 도덕 교과서를 믿었다. 내가 부족해서 행복하지 못한 것이라 여겼다. 관계를 망칠까 봐 거절을 어려워했고,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채워주려 애썼다.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고마워하지 않았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타인의 친절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만 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관계에 완전히 지치는 때가 찾아왔다. 감당할 수 없는 분노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내 삶 어디에도 ‘편안한 뜻’ 같은 건 없어 보였다. 어렵게, 미움받을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 기분을 어떻게 알고 어떻게 맞추겠는가. 미움받아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했다. 미워하는 건 그 사람의 문제니까. 타인이 나를 사랑해봤자 얼마나 사랑할 것이며, 또 얼마나 미워할 것이라고 전전긍긍한단 말인가. 모두가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태풍이었다. 거절당하고 비난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니, 그러한 일들만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었다.
분별심을 너무 내서 내 안에 괴로움이 많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좋고 나쁘고, 더럽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추하고를 저울질하는 나의 인식이 마음을 시끄럽게 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나의 인식이 나를 불편하고 괴롭게 한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참된 방법을 알지 못한 채, 내 마음대로 추측하고 해석한다. 세상에 대해 느꼈던 모든 문제는 내 마음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조화로운 삶은 무엇을 더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행위를 멈추고 생각을 덜어내고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인정하는 일이다. 사물과 존재의 본성을 바로 볼 때나 가능한데, 내 생전에 그 맛이나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르지만, 몰라서 죄를 짓기도 한다. 내가 그러하듯 남들도 그럴 것이다. 내가 이해받기를 바라듯이 남들도 그럴 것이다. 분별심을 내고 있다는 자각만 있어도 다행이겠다. ‘편안한 뜻’은 내가 만드는 것이고, 내가 느끼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편안한 뜻을 맞이한다’는 이름대로 살아보려 애를 쓴다.
세상이 고수에게는 놀이터요, 하수에게는 생지옥이란다. 고수도 시작은 하수였을 터. 쓰디쓴 하수의 시절 없이 어떻게 고수가 될 수 있으랴. 다음 생에서는 덜 헤매고, 더 지혜롭기를. 유유자적 소풍 같은 삶이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