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김씨 세 명이 죽은 최씨 한 명을 못 이기고, 최씨 세 명이 강씨 한 명을 못 당하고, 강씨 세 명이 안씨 한 명 앉을 자리를 못 넘본다. / 최씨 앉은 자리에는 풀도 안 난다. 강씨는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풀이 안 난다. 안씨는 생각만 해도 그 자리에 풀이 안 난다.
나는 안씨(安氏)다. 특출나게 자랑할 것 없는 안씨는 유독 ‘고집’ 부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다. 정작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 고집이 사람 나름이겠지, 설마 성씨 가려가며 나타날까 싶다. 혈액형이 성격과 무관함에도 여전히 신앙처럼 믿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한 번 받아들여진 상식은 바뀌기 어려운 모양이다. 근거가 있는지 알 수도 없는 ‘안강최 고집’ 이야기는 거의 일반상식 수준이 되었다. 나도 안씨만 아니라면 이 정보에 오류가 있는지 살펴보는 일은 하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안씨 성 가진 사람이 고집부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역시 고집은 안강최라더니.’ 하며 확신을 굳히지 않을까.
안씨 못지않게 고집이 세다는 강씨(姜氏)는 또 어쩌다 그런 처지가 되었을까. 큰 형부는 강씨인데, 안씨인 언니와의 사이에서는 역대급 고집쟁이가 탄생해야만 이야기의 서사구조가 맞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형부나 조카들 모두 모난 데 없고 사회성 잘 갖추어진 모범 시민이며, 고집부리다가 질타받을 만한 짓은 하지도 않았다. 내 입으로 안씨 옹호해봤자 호소력 없겠지만, 강씨만큼은 그렇게 독종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다. 혹시나 해서 큰언니한테 확인해봤더니, 모르는 소리 말라며 형부 고집이 세다고 혀를 내두른다. 객관적으로 평가한 거냐는 내 물음에, 밖에 나가서는 허허거리고 자기한테만 고집을 부린다고 대답한다.
최씨 고집이 서열 3위이기는 하지만 그 유래에 대해서는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듯하다. 고려말 최영 장군은 요동 정벌이 좌절된 후 이성계에 맞서다 참형을 당했다. 죽기 전 ‘내 평생 무엇을 탐한 적이 없다. 만약 내가 탐욕이 있었다면 내 무덤에 풀이 자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내 무덤에 풀이 자라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 최영 장군의 무덤에는 오랫동안 풀이 자라지 않으면서 충절과 청렴함을 증명해 보였지만 후손들은 그냥, 고집쟁이일 뿐이다.
강씨 고집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는데, 고려말부터 세종 때까지 살았던 강회중(姜淮仲)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고려 유신인데, 태조 이성계가 여러 차례 벼슬을 권했으나 끝내 물리치고 고려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고 한다.
안씨 고집은 조선 세조 때 순흥 안씨 가문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세조의 동생 금성대군은 피바람을 부른 1456년의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순흥에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도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다가 발각되는데, 단종은 폐위되어 영월에 있었다. 이때 고향의 유림으로 단종 복위를 도운 700여 명의 순흥 안씨가 멸문지화를 당하고 만다. 순흥으로부터 30리 지역 백성들도 역모의 땅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모조리 학살당했고, 그 피가 흐르다 멈춘 곳을 지금도 피끝마을이라 부른다. 이씨 왕조는 자신들에게 대항한 사람들의 의리와 절개를 표현할 다른 단어가 필요했을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니만큼, 그들의 기록에 왜곡이 없는지 의심해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역사 왜곡이라면 일본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본은 일제 강점기 때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하고 거액의 사업비를 들여 《조선사》를 편찬했다. 일본인으로 구성된 조선사 왜곡 3인방이 있고, 몇 명의 조선인 사학자들이 가세했는데, 이들 중 이병도는 해방 후에 서울대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쳤다.
독립운동가 중에서 대표적인 몇 분을 제외하고는 알지도 못할뿐더러, 그 몇 분에 대해서조차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근래에 들어서야 깨달았다. 이것이 나만의 얘기일까? 내가 무식해서 그런 거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안중근 의사의 낯선 사진들을 접했을 때, 왜 이제야 이런 사진을 볼 수 있게 된 것인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효창공원에 가묘(假墓)만 있을 뿐이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날이 2월 14일이라고 한다. 그날 우리는 초콜릿 생각밖에 안 한다. 독립된 지 75년이나 된 나라의 현실이 참으로 씁쓸하다.
애들이 초등학생 때 읽던 위인전의 기억도 떠오른다. 나는 단재 신채호 선생을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민족정신을 일깨우고자 노력하신 분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위인전에는 괴팍한 고집불통으로만 묘사되어 있어서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그런 책을 읽고 신채호 선생을 존경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 세상에 가득한 말과 기록들, 그리고 수많은 의견 중에서 진실이 있기는 할까? 톰 필립스는 저서 《진실의 흑역사》를 통해 진실을 알아내는 데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지만, 근거 없는 추측이나 거짓 정보는 너무도 쉽게 생산되며, 난무하는 거짓말에 지쳐 판단을 포기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거짓은 진실보다 널리 믿어진다고 봤다. 인간 세상은 애초에 진실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까지 했다.
역사도 기록한 사람의 관점이 들어가면서 본질과는 동떨어지게 되고 만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인식이라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개인의 자아가 개입하면서 본질이 왜곡된 상태를 창조해낸다고 한다. 결국, 우리가 보는 것은 사물의 본질이 아니라 본질이 왜곡된 상태 즉 실존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을 믿을 뿐이다.
우리가 접하는 많은 가설이 논리에 맞는지 의심해보는 게 당연하건만 대부분은 생각하기를 게을리한다. 남이 만들어놓은 불확실한 정보를 나의 지식으로 삼으면서 세상의 이치를 어찌 파악할 수 있을까. 스스로 생각하기를 게을리하면 다른 사람의 생각대로 살게 된다. 인식의 전환은 ‘나는 모른다.’에서 출발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면 낡은 지식은 버려야 한다.
새로운 정보 하나를 알게 됐다. 안강최 고집의 진실에 대해서다. 안강최는 안씨, 강씨를 가리키는 게 아니고, 경주시 ‘안강읍에 사는 최씨’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안강읍의 최씨는 바로 ‘경주 최씨’다. 그렇다면 내 성씨와는 상관도 없는 헛소문에 불과한데 내가 너무 전의(戰意)를 불태웠구나 싶다. 그런데 최씨는 여기서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가련한 최씨를 위해 다른 소문 하나를 은밀히 알려주겠다. 내장이 쏟아져도 그것을 들고 십 리를 간다는 성씨가 있으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집쟁이는 바로 손씨(孫氏)라는 사실이다. 또다시 소문에 현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