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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by 정리 dreamer 2023. 1. 2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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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몇 년 전에 세종시의 아파트를 샀다. 아파트값은 10억을 가뿐히 넘겼다. 친구의 남편은 로또에 당첨되는 새로운 꿈을 꾼다고 한다. 내 꿈을 묻기에 고향에 내려가 작은 카페 차리는 거라고 했다. 꿈이 참 소박하다고 친구가 대꾸한다. 초라해서 서글픈 내 꿈이여….
내가 기억하는 첫 소원은 도시로 전학 가는 거였다. 4학년 때부터 1년을 졸라 도시로 나올 수 있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첫 사건이었지만, 그때는 그런 의미를 몰랐다.
그토록 원하던 도시로 나오기는 했지만, 현실은 내가 상상하던 것과 달랐다. 첫날부터 고생은 시작되었다. 낯선 학교와 동네에 마음 붙이기도 힘들었고, 언니가 퇴근하기만을 기다리는 것도 고역이었다. 도대체 좋은 게 하나도 없었다. 고향의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것에서 위안을 얻었다. 중학생 때는 펜팔을 했는데, 지금도 새 편지지를 보면 가슴 설레던 그때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나는 편지 쓰는 일을 몹시도 사랑했다.
고등학교 도서관은 오래된 목조건물이었다. 조용한 도서관에서는 마룻바닥 삐거덕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곳에 드나들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데미안》과 사랑에 빠졌고,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도 좋아했다.
20대의 많은 날을 커피숍 구석진 자리에 앉아 책을 읽으며 보냈다. 이해하지도 못하는 어려운 책을 몇 시간씩 읽기도 했는데, 읽으면서도 참 의아했다. 이렇게 읽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 짓을 멈추지 못하는가. 분명한 건 이때부터 카페는 내 영혼의 다락방이었다는 거다. 나는 지금도 기운을 차리고 싶으면 책을 들고 조용한 카페를 찾는다.
40대 초반에 등단하고, 몇 년 후 글쓰기를 접었다. 수필가만큼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자신을 드러내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내가 어떻게 사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을 텐데도, 사람들은 나에게서 각자 보고 싶은 모습을 봤다. 세상이 낯설고 무서웠다.
감정을 속으로만 삭이는 것은 아주 오래된 습관이거나, 타고난 성향이었다. 자취하면서 힘든 일이 많았지만, 엄마한테나 같이 지내는 큰언니한테도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예외가 있었는데, 전학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집에 내려갔다가 돌아오던 날, 엄마는 나를 시장에 있는 옷가게로 데려가 검은 점이 박힌 하얀 블라우스와 멜빵 주름치마를 사주셨다. 내가 돌아가기 싫다고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옷을 입고 군말 없이 버스에 올랐다. 차창 밖의 엄마와 작별인사를 하고 버스가 움직이자 눈물이 났다. 그 후로 엄마에게 힘든 내색을 한 기억이 없다.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와 힘든 일밖에 없었는데 운명은 왜 그 길로 나를 이끌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읽고 쓰는 게 운명이라면 그때 만들어졌을 것이다. 행복하기만 했다면 다른 것을 꿈꾸었을까. 그야말로 가지 않은 길이니 알 수 없다.
모든 위대한 운명은 고난과 역경의 극복이 필수일 터. 내가 위대하지는 못해도, 편안하기만 한 꽃길이 반드시 좋은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나도 조금은 극복한 것이 있다고 위로를 할 만큼 여유가 찾아들었다.
나이 오십이 되면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글을 쓰지 않는 날이 길어져도 불안하지 않았다. 몇 년간은 책만 읽었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재미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나의 허한 속을 채우는 독서가 몇 년 이어졌다. 여전히 흔들리며 걷고 있지만, 그래도 계속 걸어갈 힘을 얻은 시간이었고, 지금 나를 지탱해주는 모든 힘은 그때의 독서를 통해 얻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기를 보내고 나서 ‘정리수납전문가’라는 자격을 얻어 일을 시작했다. 이런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거야말로 나를 위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정리가 너무 좋아서 공짜로라도 해줄 텐데, 돈까지 받으니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바쁘게 일을 다니는 동안은 글을 쓰지 않아도, 책을 읽지 않아도 좋았다.
어렸을 때부터 청소하고 정리 정돈하는 것은 내 생활이었다. 옷장의 옷을 끄집어내어 착착 접어 넣고, 찬장을 닦은 후 양념들을 가지런히 놓아두었던 기억. 홍역에 걸렸을 때 찬바람 쐬면 안 된다고 했는데도 나와서 청소하다가 엄마한테 혼났던 기억. 바깥마당에 비질하는데 함석판이 널브러져 있길래 치우려고 들었다가 똬리 틀고 있는 뱀을 보고 기겁했던 기억. 자취하면서도 집에 내려가면 쓸고 닦았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정리정돈 할 때 몰입도가 최상이어서 시간 가는 줄도, 힘든 줄도 모른다.
어느덧 글을 다시 쓰기로 한 나이가 되어있었다. 벌써 12월이었다. 나의 오십이 그냥 이렇게 지나가는 건가 싶었다. 등단한 출판사의 온라인 카페를 몇 번 드나들고 있을 때였다. 정리정돈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지역 모임을 만들기로 했고, 모임 장소를 물색하다가 수필 지도 선생님의 카페를 생각해냈다. 몇 년 동안 연락 못 드린 것은 생각도 않고 덜컥 전화를 걸었다. 통화하다 보니 전화 드린 목적은 뒷전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다시 글을 쓰리라는 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계셨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길이 열렸고, 그것은 마치 선물 같았다.
며칠 후에 선생님을 뵈러 갔다. 그곳의 세월은 너무 고요해서 흐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쉰 살의 12월이 사흘 남아 있는 날이었다.
이제 남은 꿈들을 생각한다. 운명에 애걸복걸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 나에게 말을 건다. 준비하라고. 나는 고향으로 갈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 있는 동쪽으로 큰 창을 내리라.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글도 쓰면 좋겠다. 막걸리도 빚고, 작은 밭도 일굴 것이다. 시골이 좋아 찾아오는 이들에게 쉼터를 내주고 커피를 내리리라. 소박하고 따뜻한 내 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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