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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에 대하여

수필

by 정리 dreamer 2023. 1. 2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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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분한 집에 가난의 신이 머문다는 말이 있다. 부자의 집이라고 해서 모두 깨끗할 리는 없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한 집들이 있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이들일수록 청결에 대한 개념도 없고, 도움의 손길마저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겨우 설득하여 정리를 해주더라도 필요한 물건과 불필요한 물건을 구분 짓는 것에서부터 어려움을 느낀다. 그 많은 물건마다 버리면 안 되는 이유와 사연이 있고, 버리는 행위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한다.
행복한 사람의 마음은 과거가 아닌 미래로 향한다. 반면에 불행한 사람은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불행한 과거와 현재만 존재할 뿐이다. 과거의 기억과 물건들로 현재마저 어수선하게 만든다.
집의 상태는 마음의 상태를 나타낸다. 어수선하고 엉망진창인 집에 살면서 마음이 평온할 수는 없다. 마음이 어수선할 때 방 정리를 하면 진정이 되고 차분해진다. 머무는 공간과 사람의 마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마음을 치유하는 일과 공간을 개선하는 일에는 같은 방법이 적용된다. 불필요한 물건을 비울수록 공간이 살아나듯이 불필요한 생각을 비워내면 마음이 살아난다. 우리는 마음에나 머무는 공간에나 쓸데없는 것을 너무 많이 두고 산다. 집에 쓰레기를 두는 사람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물건은 버려야 한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판단하는 일은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가능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추구하는지 알고 있다면 나에게 어떤 물건이 필요한지도 명확해진다. 그 이외의 것과는 결별해야 한다. 내가 간직하기로 한 물건들은 나를 보여준다. 내 마음에 들어온 책, 다시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책만을 남겨놓은 책꽂이는 나의 내면을 드러낸다. 좋아하는 옷만 남겨놓은 옷장은 나의 개성을 보여준다.
나는 세상 모든 옷을 탐내기보다는 한 가지 스타일을 고집하는 사람을 닮고 싶다. 스티브 잡스의 청바지와 검은 목티, 유명한 잡지의 편집장이던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검은색 스커트처럼 나를 대신하는 고정된 스타일을 갖고 싶다.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기본 스타일의 무채색 옷’이 현재 내가 도달한 지점이다.
세상은 온갖 물건으로 넘쳐나지만, 나는 이것들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 한다. 편리하고 예쁜 물건들에 대한 욕망보다는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다.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죽을 때까지 사는데 충분할 것이다. 예쁜 쓰레기들이 내 집을 점령하도록 허락하고 싶지 않다.
프레드릭이라는 생쥐가 주인공인 동화가 있다. 늦가을 무렵 다른 쥐들은 겨우살이 준비로 바쁜데 프레드릭만 멍하니 앉아 있다. 햇살과 색깔과 낱말을 모으는 중이다. 겨울이 되고 모아둔 곡식이 바닥나자 프레드릭은 쥐들에게 태양의 따뜻한 온기, 여름의 찬란한 색깔, 계절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낱말을 들려준다. 쥐들은 프레드릭 덕분에 배고픔을 잊었을 뿐만 아니라, 기뻐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아름다운 것을 볼 줄 알고 그것을 모아둔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마음도 달래줄 수 있다. 영혼을 채우는 것들은 보관하기 위해 더 넓은 집이 필요하지 않고, 모으고 쌓아둬도 난장판이 되지 않으며,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해진다.
많은 것을 모았으나 불행한 사람들이 있다. 물건에 애착이 많아서 불행해진 게 아니라, 불행하니까 물건에 집착하는 것이리라.
A는 수백 개의 화장품을 갖고 있었다. 안방은 화장품으로 넘쳐났는데, 그것들이 자신의 분신처럼 느껴져서 단 한 개도 버리지 못하겠다고 했다. 남편은 안방에서의 생활을 거부했다. 그녀의 책꽂이에는 신경쇠약에 관련된 책들이, 약통에는 신경정신과 약이 보였다. 화장품뿐만 아니라 옷과 가방도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그녀는 극도의 불안을 자주 느꼈고,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B는 옷과 책이 유난히 많았다. 옷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색깔별로 사두었다. 특별한 날에나 어울릴 것 같은, 나라면 입을 일이 없을 듯한 옷에는 상품 태그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책도 얼마나 많은지, 큰 책꽂이에도 다 꽂지 못한 책을 공사장 벽돌처럼 바닥에 쌓아 놓았다. 책들의 제목은 하나같이 그녀의 지식과 교양의 정도가 만만치 않음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 많은 책을 다 읽었나 했더니 그냥 모은 것들이라고 솔직하게 대답한다. 끝없이 물건을 사들여도 여전히 공허하다는 걸 그들은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C의 가족은 검소함이 몸에 뱄다. 그녀의 옷장은 두 칸이면 넉넉할 정도였다. 직장에 다니는 40대 여성의 옷장이 그 정도로 검소한 것은 처음 봤다. 더 놀란 것은 그중에도 잘 입지 않는 옷이 있다며 주저 없이, 미련 없이 버릴 옷을 빼는 것이었다. 남아 있는 옷은 수수해서 언제나 입을 수 있고, 아무것에나 걸쳐도 어울릴 것 같았다.
요즘에는 아무리 알뜰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옷이 해질 때까지 입지는 않는데, C의 남편은 셔츠의 목깃이 너덜너덜한데도 좋아하는 옷이니 더 입겠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싸다는 동네에 살기 때문인가. 초라하기보다는 검소해 보여서 좋았다. 이미 넉넉한 그들은 부자처럼 보이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집을 채우는 건 돈만 있으면 가능하지만,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마음을 채울 수는 없다. 물건으로 채우고 싶은 마음은 욕망이 되고, 욕망은 적당한 선에서 멈추지 않기 때문에 불행과 어울리는 말이 되고는 한다. 마음의 평안은 채울 때가 아니고 비울 때 찾아온다. 비우는 일에는 돈도 들지 않는다. 버릴 것에는 미련을 두지 않고, 간직할 것들을 귀하게 여기고 산다면 삶이 얼마나 정갈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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