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정은 자동차로 두 시간 반 거리에 있다.
15년 이상을 주말에만 다니다가, 몇 해 전부터 평일에도 종종 내려갔다.
그때마다 엄마는 잘되었다 싶은지 나를 앞세워 은행에도 가고, 병원에도 가고,
필요한 물건을 기억하고 있다가 사고는 하셨다.
아버지는 튼튼한 두 다리와 오토바이까지 있어서 어디든지 가시지만,
엄마는 걷기에는 힘에 부치고, 버스는 불편하고, 택시는 돈이 아까워서 못 타신다.
그래서 요즘에는 일부러 평일에 시간을 내 친정에 내려간다.
친정에 가는 날이다.
점심때가 지나서야 들어가 혼자 밥상 앞에 앉았다.
엄마는 내가 점심 다 먹기를 기다렸다가 외출 채비를 하시고, 아버지도 겉옷을 챙겨 입으셨다.
배추밭에 물 주러 나갔다가 넘어져서 무릎 수술을 받은 뒤로는
아버지 역시 집밖에 다니시는 게 불편했던 모양이다.
올해는 들깨가 흉년이라 값이 비싸다는데
한 말 팔아보자고 하셔서 방앗간에 먼저 들렀다.
들깻값 8만 원을 손에 쥔 엄마는 이렇게 비싸게 팔아보기는 처음이라며 좋아하신다.
은행에도 들르고, 마트에서 장도 보셨다.
모처럼 두 분 다 모시고 나왔는데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가 아쉬워서 이모한테 가보자고 말씀드렸다.
이모네 집은 외가와 한 동네다.
전에는 외가를 먼저 찾았지만,
외조부모님 돌아가시고 외숙모마저 안 계신 지금은 이모네 집이 더 편하다.
어렸을 때는 외가에 다니느라 고생을 많이도 했다.
교통이 불편해서 한나절도 더 걸리는 때가 많았다.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건 다반사고, 그나마 오지 않으면 걸어서 갔다.
지금은 자동차로 30분이면 족하니,
세상 좀 살아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그 말이 절로 나온다.
세상 참 좋아졌다.
연세 80을 넘긴 이모는 평생 마음 아픈 일들을 겪으시고,
지금은 몸까지 아파 그저 억지로 사는 것처럼 보인다.
차와 과일을 내어드리고 앉아있는데 현관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이모의 하나밖에 없는 딸인 순자 언니 내외다.
어릴 적, 외가에 오면 언니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언니 따라서 밭에도 가고, 빨래터에도 가고, 집안 잔치에도 갔었다.
순자 언니 말고도 세 명의 오빠와 주사 심한 이모부가 계셨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모부는 기억의 어느 순간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이모부의 뒤를 이어 세상을 등진 사람은 어처구니없게도 막내 오빠랑 둘째 오빠였다.
나랑 나이 차이가 적어서 잘 어울려 놀았던 오빠들인데
중학생 때 연탄가스 사고로 한 날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불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큰오빠는 좀 모자란 여자랑 결혼해서 애 셋 낳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집안에는 어린 사내아이 둘과 여자들만 남았다.
별안간에 순자 언니는 다섯 식구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
결혼해서도 신경은 온통 친정에 가 있는 듯했다.
세상 모든 짐은 아니더라도 가족의 짐은 다 지고 살아온 순자 언니.
목소리는 낭랑하고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었다.
눈빛은 따스하고 몸은 부지런하다.
마음 한편 어디에도 나쁜 것은 들어있지 않고, 선량함만 가득하다.
이모와 언니는 오랜만에 이렇게 모였으니 저녁을 먹고 가라며 성화다
달걀 한 판을 들고 왔는데, 이모네 냉장고에도 한 판 그대로라 달걀말이라도 해서 좀 줄여야겠구나 싶다.
오랜만의 시도이기도 하거니와 완벽한 달걀말이를 만들어본 적이 없는 터라 되는대로 달걀을 굴렸다.
그것을 보던 언니는 어쩜 그렇게 잘하냐며 연신 감탄을 한다.
나는 속으로 갸웃하다가, 이 정도면 잘하는 건가 싶어 진심이라고 믿어버렸다.
언니가 다른 반찬을 만드는 동안 싱크대를 정리했다.
이모가 몇십 년 동안 아무렇게나 쌓아두기만 하고 손도 안 댄 게 분명해 보이는 물건들을 죄다 꺼내고,
필요한 것만 추려서 제자리에 두니 한결 깔끔해졌다.
언니는 이번에도 칭찬을 쏟아낸다.
나는 정말 정리의 신이라도 된 것만 같다.
어렸을 때 얘기를 하는데 우리집 네 자매 중에서 내가 제일 예뻤다고 순자 언니가 그런다.
어딜 가나 주인공은 동생이었고
주인공을 몹시도 욕심내는 작은언니가 있었는데,
지금 순자 언니는 무슨 뚱딴지같은 말을 하고 있담….
나는 이제껏 내가 못생겼거나 최소한 예쁘지 않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에게 직접 대놓고 못생겼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못생긴 편에 속한다고 믿게 만든 사람도 작은언니밖에 없다.
얼굴은 넓대대하고 코는 납작하고 어쩌고저쩌고….
나는 하필이면 그런 소리를 귀담아듣고 내 정체성의 한 자락을 빚었던 것이로구나.
스스로 믿으면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법인데,
내가 못난이라는 믿음 역시 쓸데없이 견고하다.
달걀말이 잘했다는 것은 쉽게 믿겠는데,
내가 예뻤다는 말은 아무래도 순자 언니의 착각인 것만 같으니 말이다.
다만, 언니가 그 중요한 얘기를 왜 이제야 할까 싶기는 하다.
어찌 생겼건 예쁜 줄 알고 살았더라면 훨씬 행복하지 않았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예쁘면 얼마나 행복할지.
그런 행복은 노력하지 않아도 거저 생기는 거라서 좋기는 하겠다.
나에게 순자 언니가 예쁘게 보이는 이유는 얼굴이 아니라, 언니의 사는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나이 60이 다된 지금까지도 언니는 주변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고 도움이 될 뿐이지 짐이 된 적은 없다.
그것을 손해라고 여기지도 않고, 운명을 원망하지도 않으며 그렇게 사는 방법밖에 모르는 사람 같다.
몇 시간 머물면서 언니의 칭찬 세례를 받고 나니 기분 좋은 것이야 당연했고,
많은 날을 이렇게 좋은 기분으로 살았을 언니의 아이들한테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 아이들은 언니의 예쁘고 따뜻한 말을 받아들여 자신의 정체성을 빚었을 테지.
행복한 아이들은 언니의 복일 것이고, 결국 언니는 한평생 복을 지은 셈이다.
마음으로 짓고, 말로 짓고, 몸으로 지은 복.
복을 짓는 사람은 자기 몫의 복이 적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반면에 공짜 복을 바라는 사람은 복을 짓지 않는다.
순자 언니는 타고난 복은 없어도, 자신의 복이 거할 으리으리한 집을 짓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