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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트리가 자라는 집

정리수납

by 정리 dreamer 2023. 4. 1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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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아파트의 꼭대기 층을 사서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거실 높은 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살을,
하얀 커텐이 은은하게 품어준다.
유난히 환하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집이다.
 
 천장에 닿을 만큼 크게 자란 열대식물이
이 분위기에 잘 어울렸다.
나무화분이 두 개 더 있었는데,
여자고객이
레몬나무라면서
잎을 따서 향기를 맡게 해준다.
 


깜짝 놀랄 정도로 상큼한
레몬의 향이 그대로 배어있었다.
갖고 싶은 나무다.
명품백보다도 나를 더 설레고 행복하는
물건들이 종종 있다.
오래된 물건이나, 식물이 그렇다.
 
벽 한 쪽은 카페처럼 꾸며놓았다.
전체적으로
가정집이라기보다는 분위기 좋은 카페 같다.
 
여자고객의 첫인상은 ‘매우’ 편안했다.
함께 시간을 보낼 수록
편안하게 해주는 성품이
정말 돋보였다.
이렇게 편안함을 주는 사람을
근래에 만나보질 못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집에서
사시니 얼마나 좋으세요."
 

처음 이사왔을 때는 예뻤죠.
그런데
짐이 하나 둘 늘더니,
지금은 이렇게 정신없게 됐어요.
뭘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르겠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심란해요.

 
종일, 일터에서 힘들었을
맞벌이 아내들의 하소연은 비슷하다.
집은 쉼의 공간이어야 하는데,
제 2의 일터가 되고는 한다.
 
그래서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고,
아내에게도 아내가 정말 필요하다.
 
그렇다고, 집에서 살림 잘하는 아내가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니다.
보람이나 자부심을 느끼는 전업주부는
거의 없다고 본다.
 
가족을 살리는 일이어서
‘살림’이라고 할 만큼
정말 중요한 일인데,
아무도 중요하다고 인정하지 않는 현실.
 
경제적 능력만이 최고인 사회의
씁쓸한 단면 아닐까.
 
나는 살림에 소질도 있고,
흥미도 있고, 적성에도 맞았지만
보람을 느껴본 적은 없다.
남편이나 시어머니는
돈을 벌어오기를 원하는 눈치였다.
남편은 돈 잘 버는 여자들 얘기를
틈만 나면 늘어놓았다.
나는 내가 식충이가 된 것 같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정리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보니,
이제야 사람이 된 것 같은 충만함이 생겼다.
자존감도 회복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지만 사실이다.
 
어쨌든 일하는 아내는
슈퍼우먼이 되거나,
살림에 손을 놓거나 둘 중의 하나인데,
둘 다 스트레스 받기는
매 한 가지인 듯싶다.
 
이러니,
정리해주는 사람이
당연히 필요하지 않은가.
필요할 때마다
그림같이 정리해주면
한동안의 체증이 다 사라질 테니 말이다.
 
여자고객은 꽤나 알뜰하다.
직장을 다니지만,
자신을 위해서도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정리비용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좋다는 건 안다.
내일 손님이 온다는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도 모른다.
 
혼자서 하려니,
당황스럽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는
보이는 곳을 먼저 치우는 게 순서다.
거실, 식탁 주변이 눈에 거슬린다.
2층 올라가는 계단 밑도 어수선하다.
뭐든지 짱박아놓기 좋은 곳이지 않은가.
이곳들 위주로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면
주방 전체를 하게 되고,
세탁실까지 연결이 된다.
물건을 분류하고
적당하다 싶은 자리에 수납하기 위해
열어보면,
그곳 역시 정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연쇄적으로 손이 간다.
 
하나의 공간에는
쓰임이 같거나 비슷한
물건만 수납하는 게 원칙이다.
 
공간이 남는다고 해서
상관도 없는 물건을 갖다놓으면 안 된다.
이러기 시작하면
모든 물건이 또다시 뒤섞이게 되는 것이다.
모든 물건에는
각자 별도의 공간이 따로 있어야 한다.
 
사람도 밤이 되면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듯이,
물건들도 쓰임을 다하면
각자 자기 공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산짐승, 들짐승, 날짐승도
자기 자리로 가서 잠을 자는데
우리집 물건들만 아무데나 맘대로 돌아다니면쓰겠나!
 


버릴 것은 바닥에 던져놓고
후다닥후다닥 정리하고 있으면
눈치 빠른 고객이 와서 어느새 다 치운다.
나름 손발이 잘 맞아서,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계단 밑에도 정갈해졌고,
세탁실, 주방, 식탁 위도 정돈이 되었다.

내일은 중요한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단다.
남자고객은
먹을 것들을 잔뜩 사왔다.
이제 마음 편하게
즐기기만 하면 될 것이다.
 
여자고객이
남편한테 말했다.
 

자기야,
나 오늘 로또 맞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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