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과 아파트의 차이는 뭘까.
아파트에 없는 공간이
전원주택에는 많다.
아파트는 브랜드가 달라도
다들 비슷한 구조이지만
전원주택은 생긴 모양도 조금씩 다르고,
내부 구조도 같은 집이 없다.
따라서
공간은 활용하기 나름이며
가구배치도 창의적으로 할 수 있다.
또는
어떻게 배치하는 게 최선인지
알 수 없어서
난감할 수도 있다.
보통 베란다나 창고 등의
여유 공간은 충분한 것 같다.
전원주택의 단점은
관리를 직접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귀찮게 여기지 않을 만큼의
부지런함이
있어야 한다.
몇 년 전부터
정리하러 들어가는 전원주택이 있다.
아들의 아토피가 심해서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황토로 집을 짓고 사는 분들이다.
산이라고는 하지만
앞에 큰 저수지가 있고,
주말이면 사람들로 붐비는 유원지다.
도로가에는 상가와 식당이 즐비하고,
그 뒤쪽으로 들어가면 고객의 집이 있다.
살림에는 관심도, 소질도 없으신 분이다.
일 년에 몇 번씩 해외여행 나가고,
평소에는 취미생활도 하고
뭔가 배우러 다니느라 바쁘시다.
집안일에 관심이 없다고는 하지만
아예 손을 놓을 수는 없는 게
주부의 입장이다.
정리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정보를 접한 후
바로 연락을 주셔서 만나게 되었다.
처음부터 혼자 정리할 것을 부탁하셨다.
하루에 얼마나 해드릴 수 있을지,
며칠이나 걸릴지 알 수 없었으나
고객님 성격이 워낙 편해서
아무 고민 없이
내 페이스대로 정리해 나갈 수 있었다.
모든 가정의 첫 번째 정리 타깃은
옷이다.
이 댁은 특이하게도 방과 방 사이의 공간에
드레스 룸을 짜 넣었다.
거실에서는 복도처럼 보이지만
양 옆에 옷장이 있다.
아빠 옷, 아들 옷이 모두 이곳에 있고,
엄마 옷 일부가 걸려있다.
엄마 옷은 방안에 있는 작은 붙박이장과
서랍장에도 더 있다.
거실 옷장에는 보관용 옷을 걸고
방에는 자주 입는 옷을 정리했다.
주방 살림은 적은 편이다.
주방 뒤쪽 베란다에 많은 물건이 있다.
긴 베란다의 한쪽은 보조주방이고,
다른 한쪽은 세탁실이다.
양쪽으로 큰 수납장이 들어찼다.
아파트에 이런 수납장이 한 개만 있어도
주부들의 숨통이 트일 텐데...
아니,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겠다.
정리 잘하는 사람한테는
보물창고일 테고,
정리 못하는 사람한테는
헤어 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일 것이다.
이 고객의 수납장은
물건들의 감옥이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물건들이 칸마다 가득 들어차 있었다.
보기 싫거나, 안 쓰는 물건들은
수납장에 넣고 문을 ‘탁’ 닫았으리라.
물건들을 다 끄집어낸다.
날짜가 한참 지난 식품들은
바로 종량제봉투로 집어넣고,
사용여부를 물어야 하는 것들은
바닥에 두었다.
고객이 사용할 것만 추려놓는다.
버릴 것은 비닐봉지에
분류해 가며 담아서 버리고,
사용할 것은 정리한다.
자주 사용할 것은
가장 좋은 위치에.
가끔 사용할 것은 위에.
무거운 것은 아래에.
보조 조리기구 밑에
수납장이 있는데
서랍에는 누구라도
손쉽게 요리할 수 있는
라면, 죽, 수프 등의 먹거리들을 넣어두었다.
엄마가 여행으로 집을 비워도
끄떡없을 것이다.
아니, 끄떡없어야 한다.
세탁실 수납장에는
온갖 종류의 세정제와
욕실용품, 화장지 등을 수납했다.
살림에 쓰이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모두 이곳에 들어간다.
손 안 닿는 위쪽으로는
언제 사용할지 모를
큰 김치통들을 넣었다.
이 모든 것을 수납해도 모자라지 않는
넓고 튼튼한 수납장이다.
전원주택이기에 가능한 옵션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 벽장이 있는데,
청소도구들을 넣었다.
문 앞에는 긴 봉을 세워두고
작업복과 모자 등 이것저것을 다 걸어두고 있었다.
현관에서 실내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장면이다.
편리함과 깔끔함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약간의 편리함을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너저분하게 걸려있던 것들이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적당한 곳으로 치우고, 버리기도 했고
봉도 배출했다.
실내로 들어섰을 때
거슬리는 것은 없다.
말끔한 공간이 되었다.
2층은 넓고 텅 비었다.
가끔 친지들이 놀러 오면 사용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그때 사용할 이불들이 벽장에 들어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현관의 한쪽 벽면은 신발장이고,
맞은편에는 많은 양의 개 사료가
아무렇게나 놓여있다.
집안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풍경이 이렇다.
현관은 그 집의 첫인상을 좌우한다.
깨끗하게 만들어드리고 싶었다.
우선 신발장부터 정리한다.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배출하는 고객을
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주저 없이 안 신는 신발을 뺀다.
신발장은 금세 텅 비었다.
남은 신발들은 사용자별로 구분해 정리했다.
전등, 형광등, 공구, 전선들도
신발장 빈칸에 정리해 넣었다.
개 사료는 큰 종이상자에
가지런히 수납했더니
그나마 정돈된 모습이다.
사료만 해도 몇 가지나 되고,
간식 종류도 다양하게 있다.
주인이 얼마나 애지중지 기르는지
이것들만 봐도 알겠다.
마당에서 사는 개가
참으로 호강을 한다 싶다.
내가 마당에서 강아지를 키울 때는
싸고 양 많은 사료에
간식은 없었다.
사람이 먹고 남은 음식도
아무거나 다 먹였다.
사람이나 개나
팔자대로 사는 모양이다.
(불쌍하고 미안한 우리 집 개들...)
현관이 훤해지니 보기가 좋다.
매일 드나드는 식구들도 기분 좋기를 바라본다.
중문을 열면 책상이 바로 보인다.
컴퓨터 연결선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더 지저분하다.
그러나
컴퓨터를 놓기에
적당한 자리가 그곳밖에 없으니
그 자리에 있는 것.
아쉬움은 접어두고
책상 위를 정리한다.
집안 모두 정리하는데
3일 걸렸다.
매일 배출물이 쏟아져 나왔다.
재활용쓰레기 버리기에 불편한 동네여서
근처 아파트로 실어 날랐다.
그러고도
몇 개월에 한 번씩 또 부르신다.
전체를 내손으로 정리했던 집이라
두 번째부터는 훨씬 수월하다.
어디를 어떻게 정리하면 되는지
다 아니까 서로 편하다.
고객은 정리를 할 줄 몰라도
정리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는
분명하게 알고 있다.
불필요한 물건들을 걷어내니
진짜 살림살이들이 보이고,
그것들을 어디에 놓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다 알게 된 것이다.
이 고객의 최대 장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는 점이다.
무엇이 필요하고 없어도 되는지
순식간에 판단한다.
내 속이 다 시원할 정도였다.
내가 전원주택에 살았을 때는
마당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었다.
햇볕 잘 드는 마당 한쪽은 땅을 갈아엎고
텃밭으로 만들어서 온갖 작물을 심었었다.
그곳에서 수확한 것들로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였다.
마당의 다른 한쪽은 정원으로 가꿨다.
매일 할 일을 만들어서 했다.
할 일이 없으면 풀이라도 뽑았다.
풀은 얼마나 잘 자라는가.
마당과 텃밭에 있다 보면 시간이 잘 갔다.
흙이 있어서 행복했다.
그러나 이 고객은
흙을 쳐다도 안 본다.
잔디와 잡초가 섞여서 자라는
그 마당이 아까웠다.
마당에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다.
천막 같은 커다란 텐트가 있는데,
안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냉장고와 수납함도 있다.
냉장고에는 술이 채워져 있고,
수납함에는 라면, 과자,
일회용 그릇과 수저들이 들어있다.
불을 피우는데 필요한 온갖 장비가
다 갖춰져 있다.
지인들을 초대하는 공간인 셈이다.
이런 곳에서 밤늦도록 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는 일이 얼마나 즐거울까.
각자의 방법으로 마당을 활용하는구나.
이 또한 마당이 있어서 가능한 즐거움이다.
마당은 흙을 파야만 맛이 아니다.
그 집으로 들어간 게 아들의 건강 때문이었는데
그 아들이 다 자라서
의대에도 진학했고
군대도 갔다.
전원주택 생활을 그만둬야 할 이유가
충분해진 셈이다.
고객님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기대해 본다.
서울, 경기, 인천
정리해드림
010. 7221. 3827
주방정리. 싱크대 시트지 붙이기. (1) | 2024.02.28 |
---|---|
주방 정리 / 팬트리 정리 (0) | 2024.02.15 |
옷정리 하는 방법 (3) | 2024.02.04 |
정리의 즐거움 (1) | 2024.02.02 |
평수 줄여 이사 가는 집 정리 (0) | 2024.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