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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남자의 냉장고

정리수납

by 정리 dreamer 2022. 10. 1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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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에 혼자 사는 젊은 남자.
소심하고 겁 많고 조심성 또한 과하다 싶었다.
정리 서비스를 받기까지 수없이 고민하고 망설였다.
어렵게 결정을 내렸을때, 엄마가 돌아가셨다며 또 연기되었다.

드디어 D-day가 돌아왔다.
작은 방 한 칸에 별도의 공간이라고는 화장실이 전부였다.
무너진 행거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고, 
갈 곳 없는 옷들이 방바닥에 수북이 쌓여있었다.
옷장 문에도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온갖 생활용품과 먹거리들이
쓰레기, 먼지와 함께 나뒹굴고 있었다.

옷만 정리되어도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무너진 행거와 새로 주문한 행거를 조립했다.
바닥에 쌓여있던 수많은 옷들을 분류해서 걸고, 옷장에도 걸고, 접어 넣으니
자리가 모자라지는 않았다.

잡동사니는 일일이 먼지를 닦아내며 분류하고 정리했다.

쓰레기까지 치우니 바닥이 훤하게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주방을 정리했다.
작은 싱크대에 모든 주방용품과
식품까지 수납해야 했다.
그래서 넓은 주방보다 이렇게 코딱지만한 주방이 더 난해하다.

그릇 몇 개와 꼭 필요한 주방도구들 뿐이었지만 술잔은 많았다.

젊은 남자가 냉장고에 있는 식품은
다 버려달라고 요청한다.
반찬통 바닥에 양념만 남아있는 것들이
반이었고,
손도 안댄 반찬이 들어있는 통이 있기도 했다.
엄마가 해줬을 이 반찬들.
요긴하게 한끼 식사를 도왔을 터.
 
엄마 돌아가시면서 경황없이 시간 보내느라
못먹은 것일까?
이제 이 남자에게 반찬을 해다 줄 사람은
없을 테지.
무엇을 먹고 살아갈까.
남이 돈 벌려고 대충 만든 음식을 먹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애정이 담긴 반찬을 먹는 삶과 못먹는 삶.
이것이 이렇게 극명하게 구분되어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이 남자의 삶은 달라졌겠구나.
엄마가 있던 때와 지금이.

군대까지 다녀온, 다 큰 이 남자가
세상에 혼자 버려진 듯해 애처로워보였다.
씩씩한 척이라도 했으면
내 마음이 이렇지는 않았을 텐데,

매사에 조심하고 움추러드는
이 젊은이가 그저 아이같기만 하다.
내 아들을 보는 듯하다.

정리 서비스를 받기까지 뭐 그리 재고 따지고 망설이던지 답답하기만 했었는데,
이 남자는 용기를 많이 냈던 것이로구나.
낯선 아줌마들에게 도움을 청하기까지
수없이 망설였겠구나.

내 아들은 그런 용기라도 낼 수 있을까 싶었다.

내 아들도 내가 없어지고 나면
이렇게 망연자실하고,
이렇게 먹을 것도 없이 살아갈까...

이 애처로운 것들을 어찌한단 말인가.

세상이 정글이 아니길.
사람 살만한 세상이어서 기댈 곳이 있기를.
사는데 엄청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혼자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빨리 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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