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살던 집은 동산 위에 있었다. 지대가 높아 물이 귀했다. 땅을 낮게 판 곳에 샘터가 자리했고, 펌프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나중에는 부엌과 가까운 마당 한쪽에 수도를 설치했는데, 물이 거의 올라오지 않아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원래 있던 펌프가 그나마 쓸모 있었다. 펌프에도 물이 올라오지 않으면 동산 아래로 내려가 마을 공동 우물을 썼다. 아버지는 물 길어 나르고, 엄마는 그 물을 아껴 썼다.
물 때문에 제일 고생한 사람은 엄마였다. 우리는 고생인지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고, 아버지는 약간의 마실 물과 세수할 물만 있으면 되었을 터였다. 물만 편하게 써도 살겠다고 엄마가 탄식했었는데, 세월이 흐른 지금은 주방에서 뜨거운 물까지 콸콸 쏟아져나오니 마법이 별거인가.
나는 부엌이 좋았다. 그중에서도 아궁이에 불 땔 때가 제일 좋았다. 아버지가 부지런히 해다 나른 근처 산의 온갖 나무들이 내 작은 손을 거쳐 아궁이로 들어갔다. 나무마다 타는 소리와 냄새가 달랐다. 불 때는 일은 요령이 필요한 작업이다. 어린 나는 자부심을 느끼며 임했으나, 매운 연기만 올라오고 불이 안 붙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손길과 입김이 닿으면 불이 살아났다. 나 혼자 아궁이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시간이 편안했다. 그리도 좋은 것인 줄 알았다면 오빠나 언니들이 서로 빼앗으려고 달려들었을 텐데, 아무도 욕심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숟가락으로 감자 껍질을 긁을 때마다 옷이며 얼굴에 전분이 하얗게 튀었다. 감자, 고구마는 쌀 다음으로 우리를 먹여 살렸다. 따뜻할 때는 감자를, 추워지면 고구마를 많이 먹었다. 감자는 껍질을 벗겨 밥 지을 때 두어 먹었고, 반찬으로도 먹었고, 간식으로도 먹었다.
담뱃잎을 수확하고 나면 새끼줄에 줄줄이 엮어, 흙으로 만든 건물 안에 매달아 건조 시킨다. 석탄가루 반죽한 것을 때서 건조실에 열을 가한다. 우리는 담배 농사를 짓지 않았지만, 집 옆에 동네 사람의 담배건조실이 있었다. 동네 아저씨는 불을 지키느라 건조실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아저씨한테 감자 몇 알을 가져다주면 불에 익혀 주셨다. 대부분 겉은 타고 속은 덜 익은 감자가 나왔다. 그걸 맛있게 먹었다. 지금도 푹 익은 감자보다는 속이 설겅설겅 씹히는 감자가 좋으니, 사람 취향이라는 게 얼마나 기분대로란 말인가.
부엌에는 두툼하고 커다란 나무 도마가 있었다. 오랜 세월의 칼질에 가운데 부분이 오목해졌다. 도마의 파인 부분은 난도질당하던 음식 재료와 함께 우리 입으로 다 들어간 걸까.
간장을 담아두던, 엄마의 손때 묻은 양념 항아리도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신식 집에서 살게 된 후에는 사용하지 않았는데, 결혼하면서 내가 들고 왔다. 사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이렇게 쓸모없는 물건들이다. 남들은 쓸모없다고 내팽개치는 오래된 질그릇만 보면, 보석을 발견한 심정이 되어버려 염치 불고하고 갖고야 만다. 이것들이 나를 부자로 느끼게 해준다.
설거지통으로 쓰던 고무 다라도 어린 시절의 부엌 풍경에서 빠질 수 없는 물건이다. 밥 먹고 난 그릇은 무조건 설거지통으로 들어갔다. 모아진 그릇을 씻고, 맑은 물을 새로 부어서 헹구는 모든 과정이 설거지통에서 이루어졌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생활도 크게 바뀌었지만, 설거지통은 모습만 바뀐 채 굳건히 주방을 지켰다. 싱크대에 늘 놓여있는 설거지통의 쓸모는 무엇일까. 설거짓거리를 담가놓는다? 사용한 그릇을 쌓아 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쌀을 씻는다? 요즘 쌀은 깨끗하게 도정되어서 물에 흔들어 헹궈 내기를 서너 번만 하면 되니, 전기밥솥의 내솥이면 충분하다.
스테인리스 설거지통에 채소도 데쳐보고, 행주를 삶아보기도 했는데 열전도에 있어서 기능이 떨어지는 듯하여 그마저도 안 하게 되었다. 설거지통을 쓸 일은 행주 헹굴 때뿐이었다. 그런데 손수건만 한 타올을 몇 장 준비해서, 한 번 사용하고 세탁기에 바로 집어넣으니 행주를 몇 번이고 헹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찜솥을 포함해서 네 개의 냄비만 있으면 살림하기에 충분하고, 프라이팬은 한 개면 된다. 유리컵 여섯 개로 물컵, 술잔으로 쓴다. 평소에 사용하는 접시는 크기별로 두 개씩이면 충분하다.
전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궁리했다면, 요즘에는 무엇이 필요 없을까를 궁리한다. 어느 날, 나의 레이더에 걸린 게 바로 설거지통이다. 설거지통이 없으면 생활에 불편할까? 없애보면 알 일. 늘 있던 물건을 치우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오랜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한다.
설거지통을 깨끗하게 씻어 볼, 채반과 함께 싱크대 밑에 넣어두었다. 가끔 나물 씻을 때나 꺼낸다. 싱크대는 그야말로 텅 비었다. 설거지를 미루라고 유혹하는 설거지통이 없으니, 밥을 먹고 나면 그릇을 바로 씻게 된다. 식구들도 깨끗한 싱크대에 본인이 사용한 빈 그릇만 덩그러니 놓기 미안한지 설거지하는 횟수가 늘었다.
한참 만에 설거지통을 꺼냈다. 나물을 씻고, 데친 뒤 헹구고, 체를 밭쳐 놓는 일까지 그것의 도움을 받았다.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도 끝났다. 싱크대 주변의 물기를 닦아내고, 행주는 세탁기에 던져넣었다.
주방일이 마무리되었다고 여기는 순간, 싱크대에 놓인 설거지통에 눈이 갔다. 여전히 거기가 제 자리라는 듯 얌전하게 앉아있다. 하지만 나는 기어이 그것을 싱크대 밑으로 넣어놓고야 만다. 깜빡 속을뻔했지만 어림없다.
단순한 삶에 대한 내 강박을 괜히 설거지통에 쏟아붓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 삶에 얹힌 것들을 더 덜어내고 싶다. 필요한 것의 목록이 더 줄어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