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ldovers'의 뜻은
남겨진 자들, 잔류자, 낙오자.
한국 개봉 시 제목은 '바튼 아카데미'
한국 개봉 : 2024. 02. 21
감독: 알렉산더 페인
주인공 : 폴 지아마티 (폴 허넘. 교사)
더바인 조이 랜돌프 (메리 램. 요리사)
도미닉 세사 (앵거스 털리. 학생)
배경 : 1969년~1970년
미국의 명문 고등학교 바튼 아카데미
2024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폴 지아마티 –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
더바인 조이 랜돌프- 코미디 부문 여우조연상
주인공 세 명은
크리스마스가 포함된 연말 연휴에
각자의 이유로 학교에 남겨진다.
이들은 각자의 삶에서도
낙오자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
그런 의미에서 영어 제목에
이중의 의미가 모두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폴 허넘
좋은 품성의 학생을 기른다는
학교 이념에 충실하고,
학문의 기본 정신을 심어주는 것이
교사의 본분이라고 믿는 교사.
원리원칙을 고집하고
불친절한 그를
교사, 학생들은 몹시도 싫어한다.
사랑도 결혼도 해본 적이 없는
그는 외로움을 술로 달래며 산다.
메리 램
남편은 약혼 기간에 사망했다.
아들의 교육을 위해
명문고등학교인 바튼 아카데미에
요리사로 취직했던 것인데,
아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에
돈이 없어서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대학생 특혜를 받지 못하고 징집되어
전쟁터로 갔다가 그만 전사하고 만다.
가난한 흑인에다가
아빠 없이 자란 아들과는
정반대의 환경에서
호강을 누리는 백인 아이들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며 살고 있다.
앵거스 털리
엄마는 아빠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재혼을 했다.
아들을 기숙학교에 보냈고,
방학기간에도 데리러 오지 않는다.
제발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는 아들에게
그동안 자신이 많이 외롭지 않았냐면서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겠다고
말하는 엄마.
이런 엄마가 어디 있냐고?
현실에도 이런 엄마는 많다.
모성애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앵거스 털리는 자신이 아버지처럼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아버지가 너무나도 그리웠지만
소통이 불가능하다.
미성년기에 부모와의 단절은
세상과의 단절이다.
친구도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느낀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언행은 거칠고 꼬여있다.
이러한 태도는
세상이 가하는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공격에는 공격으로 맞선다.
그러나 본래 심성은 따뜻하고
배려할 줄 알며 똑똑하다.
주인공 세 사람은 각자의 상처가 크고,
세상 속에 섞이지 못하고
버려진 듯한 느낌을 갖고 살기 때문에
모두 날이 서있고, 공격적이다.
서로에 대해 가감 없이 신랄하게 표현한다.
그런데도 이들은 점점 가까워지고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된다.
나는 이들의 날것에 가까운 대화가
마음에 들었다.
듣기 좋은 말, 그럴싸한 말을 남발하지만
진심은 없고,
오히려 음흉한 속내를
숨기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질려있는 중이었다.
요즘 내가 기안 84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이다.
부족한 점이 드러나고
멋져 보이지 않아도
크게 개의치 않는 태도.
부끄러움도 자만도 없는 태도.
꾸미지 않기 때문에
가식적이지 않은 말과 행동.
속의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인간.
의도를 숨기지 않으니까
의도를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도 되는 인간은
안심이 된다.
거짓의 가면을 겹겹이 뒤집어쓴
사람들을 보면 숨이 막힌다.
처음에는 기안 84를 보고 깜짝 놀랐다.
대중매체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것의 사람을 보고 있자니
낯설었다.
또 다른 예로
공효진은 남편에 대해 말하길,
속이 맑게 다 비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을 바보, 호구라 무시하지 않고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 또한 감동이었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거칠고
솔직한 대화에 유독 눈길이 갔던 것은
요즘의 내 기분 탓이리라.
속에 품고 있는 것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교언영색의 태도보다는 독설이라 할지라도
진심인 것이 차라리 나아 보였다.
물론 나는
이들이 내뱉는 정도의 독설을 견딜 만큼
내면이 강하지는 못하다.
쉽게 상처받는다.
그래서 나도 쉽게 독설을 내뱉지 못한다.
상대방이 받을 상처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공격력이 높은 것 같다.
아니면 자신의 상처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거나.
영화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도
무리 없이 느껴졌다.
눈의 초점도 안 맞고
병 때문에 몸에서는 냄새가 나며
고집 세고 투박한 성격의 교사.
과체중에 골초이며
불행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요리사.
세상과 연결된 줄이 다 끊어진
상처투성이 학생.
알게 되면 이해하고,
이해하면 사랑하게 된다.
2주 동안 함께 지내면서 이들은
서로에 대해 알게 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이해하게 된다.
그리하여
진심으로 서로를 응원하게 된다.
세 명이 한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면
서로의 빈자리를 꽉 채우고
완전체처럼 보이면서 안정감이 느껴진다.
허넘은 해고되고
덕분에 툴리는 학교에 남게 된다.
교사의 희생이 어떤 의미인지
툴리는 너무나도 잘 안다.
세상에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그 사람의 인생은 달라진다고 하는데,
툴리의 삶은 달라질 게 분명하다.
가치 있는 희생을 한 허넘의 삶도
그리 걱정되지 않았다.
술을 입에 달고 살던 그였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는
입에 머금기만 하고 뱉어버린다.
이미 달라졌다는 의미로 보였다.
메리는 동생의 초대에도
응할 마음이 없을 정도로
아들을 잃은 상실감에 빠져있었는데
마음의 안정을 어느 정도 회복했는지
동생 집으로 가서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영화를 보면서도
나도 모르게 ‘재미있다, 재미있어’라는 말이 나왔다.
취향저격인 영화였다.
따뜻하고 진심 어린 인간애,
고난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스토리.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하나 보다.